역사라는 게 원인과 결과를 놓고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경우가 많다.
보스니아에서 한 청년이 자행한 암살사건이 1,3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세계전쟁으로 발전할 것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나?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혼란을 수습할 방편으로 임진왜란을 일으키지만 명나라는 조선을 도와준다고 참전해서 결과적으로 그 후유증으로 망하고 청나라로 정권교체가 되고 말았는데 그런 결과를 놓고 보면 명나라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닌가?
지금 세계의 맹주를 자처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독립전쟁의 단초(端初)가 된 보스턴차사건만 해도 그렇다.
그 사건자체는 자기네 나라에서 처치곤란한 차(茶)를 어거지로 식민지에 떠넘기려다 식민지의 반발을 산 것에 불과하다. 후에 인도에서의 세포이전쟁이나 중국의 아편전쟁 같은 악질행태에 선봉장이었던 동인도회사의 배에 실린 차를 습격하여 바다에 버린 급진파세력들은 단지 세금에 반발해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행동이었고(그것도 아주 치사하게 나중에 발각되면 인디언에게 뒤집어씌우려고 도망갈 구멍까지 만들어 놓고.....)그게 미국이라는 나라의 탄생을 만들고 200여년 후에 지구상에 최강대국이 되어 세계의 경찰인지 깡패인지 될 줄 감히 상상이나 하였겠나 말이다.
고부군수 조병학이 조금만 탐학을 적게 했어도 전봉준이라는 농민운동가가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차지철이 김재규를 조금만 덜 약 올렸어도 박대통령은 총맞아 죽지는 않았을 지도 모르고 그 바람에 전두환이 건식으로 대통령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개인의 인생도 그런 면에서는 유사한 부분이 많다.
아니 어찌 보면 Scale만 다를 뿐 사람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무수한 변수와 경우의 수의 조합으로 과정이 만들어지고 흥망성쇠가 좌지우지되는 게 아닌가 싶다.
90년대 초의 트렌드를 돌이켜 보면 당시 오퍼상으로 통용되던 무역대리점이 가장 손꼽히는 대상중의 하나였다고 본다.
88올림픽을 전기로 수천 년 역사이래 처음으로 세계를 대상으로 문호를 개방한 역사적인 전환기에 김우중씨의 대우그룹, 제세그룹,명성그룹등으로 대표되는 무역으로 급성장을 한 신흥재벌들이 젊은 사람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고 그들의 발자취는 그야말로 신화로 각인되기에 충분했다.
외국의 아이템하나만 잘 잡아도 직원을 두고 자가용을 몰고 다닐 수 있는 회사오너가 되고 가문의 영광을 가져 오는 시대이기도 했다.
10년 전에 휘몰아치다 간 인터넷,코스닥,벤쳐광풍에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물론 나도 웅비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오퍼상이라는 무역대리점을 차리긴 했지만 자본이나, 실력이나, 영업능력면에서 아이템장사를 할 수준이 되질 못했고, 그래서 결국 무늬만 오퍼상이고 몸으로 때우는 시공,설치일을 메인으로 꾸려나가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유일무이한 일본의 거래처를 가로채려 했던 업체는 바로 우리 거래처였다.
그 업체는 정전기관련제품을 취급하고 있었고 거래도 몇 번 했었고 사장이 우리 사무실에 찾아와서 우리 아이템을 자기 아이템에 추가하고 싶다고 요청을 해서 회사가 별로 멀지도 않은 신림동에 있는지라 내가 직접 사무실에 찾아가 본 적도 있는 업체였다.
자체개발한 아이템도 있고 직접 제조도 한다고 하며 제시한 화려한 카달록의 이미지와는 상이하게 업체를 방문한 첫 인상은 아이템장사를 하는 오퍼상수준이었고 실제보다 부풀려 과시를 하려는 스타일이어서 별로 신뢰가 가질 않았었다.
자기네 카달록에 우리 제품을 포함시키겠다고 해서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허용을 해주었고
견본이 필요하다고해서 일부 Sample도 제공을 해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바로 그 사장이 뒤통수를 친 거였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 회사에 전화를 했더니 사장이 회피하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제 겨우 숨통을 돌릴 만한가 싶으니 전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기습공격을 당한 기분이었고
가만히 앉아서 칼자루를 진 상대의 처분만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기에는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며칠을 고민을 하다가 정면 돌파를 하기로 했다.
사실 계약관계상 내가 Takafuji社와 직접 상대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격식이나 체면을 따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차피 이전투구 판이 될지도 모르는데......
Takafuji社의 전무가 사무실방문시 건네준 명함의 전화로 국제전화를 걸었다.
여비서를 통해 전화를 건네받은 전무는 뜻밖이라는 듯 꽤나 반갑다고 하며 방한 시 폐를 많이 끼쳤다고 일본특유의 립서비스를 해 댔다.
피차간의 인사가 마무리되기 전에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댔다.
한국에 대한 시장조사결과가 나왔는가? 향후 계획이 잡혔는가? 등등..... 갑작스런 전화에다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해대니까 적지 않게 당황한 내색을 표하며 ‘쏘데스네’ ‘쏘우데스네’만 반복했다.
어차피 나야 거기에 대한 답변을 기대한 게 아니므로 준비된 수순대로 일방적인 대화로 밀고 나갔다.
그들이 한국에서 방문한 업체 명을 직접 거명하면서 그 업체를 어떻게 평가하냐고 묻자, 허를 찔린 듯 침묵으로 대응했다.
“그 업체는 우리 거래처다. 그 업체 카달록을 봤으면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우리가 준 사진과 자료로 만들었지 않은가?(우리도 그때 우리 카달록의 사진과 자료를 Takafuji社의 양해를 얻어서 그들의 카달록에서 자료를 발췌해서 편집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보면 바로 안다)
몇 년 동안 쎄빠지게 고생해서 이제 겨우 시장에 진입되는 단계인데 다른 업체도 아니고
우리 물건을 사다 쓰는 거래처에서 꼬리를 흔든다고 날름 제품을 공급해준다면 우리는 뭐가 되냐?.....”
말하다보니까 나도 모르게 격앙되어서 일본말이 되든 안 되든 막 퍼부어 댔다.
결국 전무가 미안하게 되었다고 하며 거래처이원화는 결정된 바도 없고 당분간 시행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답변을
듣고 30여 분간의 길고 긴 국제전화가 끝났다.
막상 변칙적인 방법으로 어필도 하고 상대를 부담스럽게 하기도 했지만 뒷맛이 개운치는 않았다.
내가 기대한 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을 비관적인 경우도 생각해 봐야 했다.
우리가 취급하는 아이템을 대상으로 일본 내에서 라이벌회사는 Achilles社이다.
비닐커텐이나 기능성PVC SHEET만 놓고 볼 때는 오히려 Achilles社가 몇 배 규모가 크다.
토쿄한복판에 본사빌딩도 있고 자국 내에 공장만 7개가 있고 세계 각국에 지사나 대리점을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62년도부터 도쿄1부증권시장에 상장되어 있는 꽤 지명도가 있는 회사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Contact를 해 본 적이 있지만 어느 정도 구체화 되지 않은
어중이떠중이Inquiery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등 여타 일본 업체들에 비해 상당히 성의가 없고 배타적이었다.
몇 번 Fax를 보내 보았지만 말단 여직원의 성의 없는 답변에 자존심이 상해서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최악의 경우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다시 Try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막연하게 접촉했을 때와는 달리 아이템을 직접 Handling하고 있다는 입장차이도 있고 또 그들의 태도를 사전에 경험해 본 적이 있으므로 좀 조심스럽게 접근하면 의외의 수확을 거둘 수가 있다고 기대도 해 봤다.
다행히 3년 전에 별로 안 좋은 기억을 남긴 그 여직원은 결혼해서 퇴사하고 없었다.
그래도 내가 사장직함을 제시하고 담당으로 배정된 친구가 주임이었다.(이 친구는 아직도 그 부서에 근무하는데 15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직급이 한 단계 올라서 주사(계장급)이다.)
마침 Achilles社에서도 한국시장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생각 외로 호의적으로 나왔고 나또한 제품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구체적인 안건을 가지고 접근했던 것이 주효해서 단기간에 업체와의 거리감을 충분히 좁아졌다고 판단된 시점에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서 상담을 했다.
대기업에다 일본 업체의 속성상 쉽사리 대리점이라든가 독점권 등의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향후 자사 제품의 한국공급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리고 Takafuji社에서 생산되지 않는 Item부터 취급을 하기 시작함으로써 Item의 종류도 다양해져서 이전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일정기간이 지나서 Takafuji社도 우리가 Achilles社와 거래를 한다는 것을 알고 뜨악해 했지만 그 과정의 실마리를 자신들이 제공한 것과 중복되는 Item은 취급하지 않는 것을 알고는 명분이 없는지라
“쏘우데시다까? 나루호도...”(그렇게 됐군요. 쩝쩝...)하고 말았다.
결국 Takafuji社가 촉발한 양다리 걸치기는 결과적으로 우리가 실질적으로 빠져 나갈 수 있는 돌파구를 제공했고
그 때 이 사건이 없었더라면 나중에 시장파이가 커졌을 때 필연적으로 생겼을 Achilles社의 다른 경쟁자와 피터지는 치열한 경쟁을 했어야 했을 지도 모르고 또 한 참후에 Takafuji社가 합병으로 문을 닫을 때에 받게 되었을 지도 모르는 치명적인 손상을 사전에 방지해 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일본의 Major업체인 2회사를 공급선으로 확보하고 나니 사실상 국내에서는 이 분야에서는 독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특히 Achilles社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있으므로 취급아이템에 대한 고급정보를 접할 수 있어 당사의 제품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제는 이전에 그토록 조바심을 냈던 대리점계약이라든가 독점권 등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어졌고...
오히려 Takafuji社의 영업팀이 새로 만든 회사에서 계약서를 쓰지 않겠냐고 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당사 제품(크린장비)에 대한 일본 독점판매권을 명시한 계약서를 쓰자고 보채고 있으나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2년 전인가 들어온 제품의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 클레임을 제기하고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담당부서장이 에스코트해서 도쿄에서 2시간 남짓 걸리는 공장을 방문했는데 입구에 우리 회사상호와 내 이름을 적었놓고 환영한다는 팻말을 걸어 놓았고 접견실에 들어서니 조그만 태극기와 일장기를 교차해서 꽂아서 준비해 놓을 걸 보고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근무인원이 몇 천 명이나 되는 꽤 규모가 되는 공장이었는데 공장장이 직접 나와서 브리핑을 하고 사과를 하는가 하면 각 Part별로 개발부팀장급들이 교대로 자료와 Sample등을 갖고 들어와서 새로 개발한 제품을 설명하는 데 그런 분위기에 익숙지 않은 나로서는 오히려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 회사에 처음 접근했을 때 말단 여직원한테 홀대를 받으며 분을 삭여야 했던 기억이 Over lap되면서 그 극반전의 아이러니를 받아 들여야 했다.
그 아이러니의 단초를 제공했던 회사의 사장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 때 기가 막히게 잘 나갔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 OO토스템이라고....
정전기관련제품으로 양이 차지 않았는지 휴대폰 키패드사업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한참 코스닥광풍이 휩쓸고 가던 2000년대 초에 코스닥등록업체를 인수하여 자사를 우회등록하면서 종종 매스컴을 탔다.(별로 안 좋은 기사로)
그리고 오래지 않아 공금횡령등으로 내분이 생기면서 피인수된 업체이사들과 고소,고발등을 하면서 대표이사직무정지가처분소송등으로 증권정보기사로 오르락거리더니 부도가 나고 말았다는 기사를 마지막 보고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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