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가깝고도 먼나라라고들 한다.
외견상 생김새는 별 차이가 없어 동양권을 벗어나면 외모로 전혀 구별이 되지 않치만 국민성이나 사고방식으로는 닮은 구석을 찾기가 너무나 어려운 나라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격차가 많이 좁혀지고 일부는 추월한 분야도 있지만 91년도기준으로 일본은 경제적인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상당히 앞서 있었고 또한 한국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도 지금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일본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 2,3위권의 경제대국이지만 울 나라는 15년간 엄청난 변화를 했다고 본다.
실질적인 경제지표로만 봐도 91년도의 GDP는 226조원 인데 반해 2005년도는 807조로, 수출은 718억불에서 2844억불로 4배 가까이 성장했고 개도국에서 세계13위권의 OECD가입국이 되었으니 최근에 외국에 나가 보면
상대적으로 외국에서 받는 대우 자체도 상당히 격상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엔지니어출신이고 7~80년대에 Field에서 느낀 일본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는 기술면에서 절대로 뛰어 넘을 수 없을 만큼 앞서 있다고 여겨졌다.
당시에 일부에서는 기술적으로 20년 뒤졌느니 15년이면 따라잡을 수 있느니 해도 책상물림들의 말장난이나 희망사항으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땅떵이가 남한의 3배가 넘고 인구가 1억2천만이나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19세기중반이후 일찌기 산업혁명의 물결에 동참하여 경제,군사강국이 되어서 확보한 지위나 기술적 우위는 엔지니어의 시각에서 봤을 때 너무도 따라잡기 버거운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 때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 때의 판단기준으로는 분명히 그랬다.
다만 20세기말의 인터넷혁명이 우리나라에게 절대적인 기회를 부여했고 또한 그걸 시기적절하게 활용하여
지금의 대~한민국이 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우리가 졸지에 IT강국이 되었는데 이는 위대하신 세종대왕님이 만드신 한글이 절대적인 역활을 했다고 본다.
자판입력자체에서 속도가 4배에서 10배이상이나 뒤지는 언어로써 IT산업의 경쟁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일본과,중국...
일본은 메이지유신이후, 중국은 문화혁명이후 선구자라는 무리들이 자국의 언어를 영어나 다른 언어로 대치하려고 했던 시도가 절대 무모한 짓이 아니었음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하고픈 얘기가 많치만(마이크로소프트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공략에 실패한 MS-word프로그램이나, 한류등....)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나리타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안에서 입국카드의 여행목적난에 Business를 쓰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사업? 이런 게 사업인가? 내가 사업상 가는 게 맞나? 그냥 무모하고 일방적인 대쉬가 아닌지?....
주위에 다른 사람들은 뭔가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탑승한 듯 하고 나만이 비싼 항공료에 걸맞지 않은 여정을 갖는 듯 싶었다.
당시만 해도 외국여행이 지금처럼 흔치도 않은 시절이기도 했고.....
모르겠다. 일단 부딛쳐 보면 뭔가 수가 나오겠지....
아무리 어려워도 몇년전에 오사카의 인력시장에서 일본노가다판에 뛰어들만큼이야 하겠냐?
토쿄에 들어가서 일단 방문업체에게서 멀지않은(?) 곳에 숙소를 잡았다.
비지니스호텔의 숙박비 7500엔정도가 아까워서 벌집같이 생긴 3500엔짜리 캡슐호텔에 들어 갔다.
나중에 물어 볼 때를 대비해서 근처에 괜찮은 비지니스호텔이름 하나도 외워 두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제품을 생산하는 메이커는 일본의 10대 그룹내에 드는 재벌의 자회사로써 비닐커텐을 포함한 PVC제품과 합성고무를 취급하는 부서는 영업부가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더구나 그 회사의 비닐커텐제품은 일본내에서도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았다.
하지만 외국쪽의 판매비중이 크지 않아 수출부분은 상사를 거쳐서 판매를 하고 있었다.
소위, 무역파트의 아웃소싱인 셈인데 처음에는 이 부분이 껄끄럽고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나중에 일본의 복잡한 유통구조를 익히고 나서는 익숙해졌만.....
세계에서 손꼽힌다는 일본의 유통구조를 이해 못하면 시장공략자체가 어렵다.
한국의 중소제조업체들이 전시회에서나 일본의 제품카달로그상의 제품단가를 보고 가장 오판을 많이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우리가 최근에 일본으로 수출하는 플라스틱롤러의 단가는 FOB로 60엔남짓인데 그들의 카달로그에는 280엔으로 가격표가 붙어있다.
또한 우리가 일본에서 수입해서 파는 자재들중 적지않은 제품들이 수입관세, 경비,마진을 다 부쳐서 파는 우리의 판매가격이 일본내에서 판매되는 소비자가격 보다 싸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첫날은 "이토"라는해당무역상사를 방문했다.
사실 이전까지의 모든 서신왕래는 이 회사하고 했다.
직접 전달하고픈 내용도 전부 이 회사가 중간에 꼽사리껴서 토스를 해 주곤 했다.
창업한지 25년 남짓이라는 연륜대비, 규모는 생각보다 작았던 것 같다.
토쿄중심의 크지 않은 10층건물에 50평남짓의 한층을 다 쓰고 있었는데 직원은 6명에 상품견본들이 사무실내부에 꽉 차있어 상당히 비좁아 보였다.
회장이 당시 나이로 70대 중반이었던 것 같은 데 백발이 성성한 채 컴퓨터앞에 앉아서 서신작성하면서
자신의 담당거래처의 업무를 직접 챙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15년이나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자기자리에서 업무를 보면서 근래에도 내가 가서 만나면 큰소리로 부르면서
두손으로 내손을 감싸며 반겨준다. 이제 90이 다 되었을텐데....
우리 담당은 40대중반의 과장이었다. 담당은 지금도 같은 사람이다. 다만 직책이 전무로 바뀌었을 뿐,
회사규모도 15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규모이다.
회장과 함께 점심식사도 하고 이 얘기 저얘기 하면서 분위기가 좋게 흘러갔다.
하지만 이 회사는 어디까지나 중계자역활만 할 뿐 결정권은 없었다.
다음날 담당과 함께 메이커인 Takafuji본사 영업부로 갔다.
약속된 미팅시간에 정확히 사무실에 들어선 영업부장과 함께 약 2시간여의 협상이 진행됐다.
솔직히 하는 말을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대충 통빡으로 때려잡으며, 조금씩 접근해 나갔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 한국시장에 관심이 있냐?
부장: 그렇다.
나: 한국에 물건을 판매해 보았는가?
부장: 아직 없다. 수차례 contact은 있었지만 변죽만 울리다 말았다
나: 원인을 파악해 보았는가?
부장: 글쎄 아직 신뢰성있는 업체를 만나지 못한 것 같다.
나: 내가 보기엔 이렇다. 당신네 제품은 물건만 공급하는 수입업체에 팔아서는 가격도 비싸져서 단가도 맞지않고
장기적으로 봐서 시장확대에 한계성을 가질 것이다.
시공능력이 있는 제조업체하고 Join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데 그런 업체들 중 직접 무역을 할 수 있는 업체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부장: 나루호도(일리가 있다)
나: 그렇다고 시장을 그대로 놔두면 너희한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너희가 이 아이템으로 일본에서 사업을 지속하고
확장하고 있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씨를 뿌려야 뭔가 기대해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그 적임자가 바로 나다. 나는 직접 무역도 할 수 있고 작으나마 제조공장도 있고, 현장시공능력도 풍부하다.
(팔방미인? 혼자서? 이 얘기를 하면서 뒷통수가 간지러웠다)
부장: 원하면 물건을 공급해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네가 봐서 사업성이 있다면 한번 시작해 봐라.
나: 너희 제품이 아직 한국시장에 진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핸드링한다면 뭔가 기득권을 보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시작할 수 있겠는가? 내가 쌔빠지게 고생해서 한국시장에 너희 제품을 소개해 놓고나서 누군가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해서 가로채간다면 나는 뭐가 되겠는가?
부장: 몇년간 하는 거 보고 결정하겠다, 대리점권은 내 권한밖이다.
나: 그러면 2년간만이라도 대리점계약을 하자. 그러고나서 결과를 보고 지속여부를 판단하자.
부장:쏘우 데스네~~ 그건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
나: ....
부장: ....
나: 아니 내가 일부러 이것때문에 직접 찾아왔는데 뭔가 성의표시라도 해야되는 거 아니요?(약간 인상을 쓰면서..)
부장:....
나: 좋타 그러면 최소한 내가 물건을 사는 동안만이라도 다른업체에 공급하지는 말아주라.(결국 같은 얘기)
어차피 너희는 아직 한국에 물건을 팔아 본 적이 없으니 손해 볼 건 없지 않은가?
부장: 고려해 보겠다.
나: 말로만 그러지 말고 문서화하자
부장: 그건 지금 당장 좀...
이런식의 얘기로 거의 2시간을 끌다가 절충안으로 내린 결론은 그 업체의 제품이 국외에 나가는 루트는 "이토"를 통해서 나가니까 "이토"와 "웅비"간에 대리점계약을 맺기로 했다.
웬간해서는 독점대리점계약을 하지 않는 일본업체의 한 단면이다.
그리고 2년후 웅비는 정식으로 Takafuji사와 독점대리점계약을 맺게 되었다.
그로부터 5년후 경쟁업체인 일본Achilles사는 자발적인 대리점계약을 당사에 요청하게 된다.
Achilles사와의 관계는 좀 더 드라마틱하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에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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